53집 | [53집] 박완서 소설 속 ‘망령들’을 통해 본 분단서사의 틈과 균열 (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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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문학연구소 작성일18-11-05 13:36 조회2,889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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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에서 전쟁은 분단체제 하에서 일상의 삶이 어긋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전후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이 일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망각되고 은폐된 것들은 소설 속에서 어떤 사소한 징후로 감지된다. 그리고 그 징후들은 현재화하여 일상을 전복하고 마는 일련의 과정으로 박완서 특유의 서술방식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진다. 이와 같은 서술 방식은 전쟁과 분단이 생산하고 있는 폭력이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작동하는 방식을 규명하고 있다.
1970-80년대 박완서의 소설은 오빠의 죽음을 토해낼 수 없는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연좌제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서사화했다. 이 소설들은 분단체제 하에서 행사되는 구조적 폭력에 의해 재생산되는 분단 트라우마의 증상을 적실하게 드러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기억의 복원이야말로 과거를 척결하는 방법이라는 견해를 세운 박완서는 전후 비정상적인 일상을 바로잡는 과정의 시작으로 기억의 복원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기억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1990년대 자전적 소설의 완성으로 ‘증언’이 되기에 이르렀다. 박완서가 진행한 ‘기억의 재현’은 트라우마를 대면케 하는 치유의 초기 단계였으며, 개인의 경험을 사회화하고 공론화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변화를 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분단서사의 틈과 균열을 내는 박완서식 저항의 서사 방식이었다.
이 저항의 서사 방식은 분단의 망령들, 즉 ‘죽은 자의 망령’과 ‘살아있는 자의 망령’이라는 기제로 전개된다. ‘두 망령의 서사’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삶을 위협하는, 즉 분단의 폭력이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 연구는 박완서가 사유했던 일상 속 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규명하고, 나아가 전쟁과 분단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의 방향은 그동안 박완서의 전쟁 경험이 사적 영역의 한계로 논의되었던 것을 사회적 영역으로 확장된 의미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하는 의의가 있다.